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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을 며칠 남겨 두고 아비가 죽었다. 슬프진 않았다. 이제 더는 맞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혈육이라고 조촐하게나마 장례를 치르려 했으나, 모아 둔 돈이라곤 없어 직접 묫자리를 찾으러 나섰다. 차갑게 얼어붙은 적막한 겨울 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와 맞닥뜨렸다. “제안을 하나 하지.” “제안이요?” “내 장례비를 내어 줄 테니 그대의 집에서 며칠 묵었으면 하는데.” 피가 흥건하게 묻은 이를 구해 줬더니 뜻밖의 제안을 해 온다. 낯선 사내를 홀로 사는 집에 데리고 가도 되는 걸까? 기꺼움도 잠시, 의문이 앞섰지만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너는 날 구해 주었다. 은인에게 이 정도도 못 할까.” “……누가 보아도 했을 일인걸요.” “네가 보았으니까.” 잠시 머무르는 객일 뿐인데 내게 왜 이렇게까지 구는 것일까. “앞으로 내 허락 없이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지 마라.” 성큼 곁을 비집고 들어오는 손님이, 신경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