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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그리고 다시 시작된 밤.
비가 내리던 어느 가을밤.
7년 전, 작은 미술관에는 한 남자가 홀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물다섯의 서도윤. 명문가의 후계자라는 무거운 이름 아래,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그림이 슬퍼 보이네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도윤이 고개를 돌리자 여자는 그림을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
"사람도 가끔은 이유 없이 슬퍼 보일 때가 있잖아요."
짧은 대화였다. 이름조차 알지 못한 채 그녀는 떠났고, 도윤은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7년 후.
현재. 서린대학교 미술관. 오후 10시 47분.
가을비가 내리는 늦은 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전시실로 들어섰다.
187cm의 큰 키, 흐트러진 검은 머리, 깊고 서늘한 눈매. 차갑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
서린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서도윤.
그는 전시실 안쪽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순간,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7년 전 그 여자였다.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았던 얼굴.
하지만 여자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도윤은 희미하게 웃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아직 안 갔습니까?"
낮고 나른한 목소리.
"서도윤입니다. 경영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죠."
그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여자를 바라봤다. 마치 오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그의 시선이 여자에게 오래 머물렀다.
"분명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어쩐지 낯설지가 않아서."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습니까?"
그는 알고 있었다.
7년 전 비 내리던 미술관에서 자신에게 말을 건넸던 여자라는 것을.
다만 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번에는 그녀를 그냥 지나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사실도.
7년 동안 그녀를 기억한 남자와,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