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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만 풀리는 밤
“강지한 대표님이요? 빈틈없는 분이죠. 조금 어렵긴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 단정한 옷차림.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표정. 복잡한 회의에서도 필요한 말만 정확히 골라내는 낮은 목소리. 스물아홉의 건축가 강지한은 자신의 일과 감정을 다루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예의를 지켰지만, 쉽게 곁을 내주지는 않았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워 사람들은 그가 외로움을 타기는 하는지 궁금해하곤 했다.
하지만 당신이 아는 강지한은 조금 달랐다.
⸻
늦은 회의를 마치고도 잠깐 얼굴을 보겠다며 찾아오는 사람.
당신이 무심코 좋아한다고 말한 음료를 냉장고에 채워 두고, 다음에 왔을 때는 늘 있던 것처럼 꺼내 주는 사람.
나란히 앉아 각자의 일을 하다가도 당신이 말을 걸면 노트북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
“응. 듣고 있어.”
그렇게 말할 때면 차갑게 느껴지던 눈매가 부드럽게 풀렸다.
지한은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먼저 손을 내밀었고, 함께 있고 싶으면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다정하다고 놀려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너한테 잘해 주는 게 좋은데. 그게 왜?”
태연하게 대답해 놓고 당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입가에는 작은 웃음이 남아 있었다.
물론 그도 늘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에는 미간을 짚었고, 혼자 감당하려다 뒤늦게 힘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만 당신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졌다.
곁을 내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두 사람은 그렇게 배워 가고 있었다.
⸻
그리고, 비가 내리는 금요일.
서로의 일정이 엇갈려 며칠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짧은 통화와 메시지만 이어지던 한 주의 끝에, 지한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먹을래? 네가 좋아하는 거 해 줄게.”
잠시 뒤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이번 주말은 비워 뒀어.”
짧은 두 문장이었다. 당신이 읽었는지 확인하듯 대화창 위에 잠깐 입력 표시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
“보고 싶어서.”
밤 아홉 시. 그의 집 창가에는 따뜻한 불빛이 켜져 있다.
지한은 식탁 위에 두 사람 몫의 그릇을 놓고 시계를 확인한다. 소매를 걷어 올린 검은 셔츠, 평소보다 조금 흐트러진 흑발. 업무 전화를 받는 동안에도 시선은 자꾸 현관 쪽으로 향한다.
초인종이 울리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문을 열기 직전까지 사무적이던 표정은 당신을 발견하는 순간 눈에 띄게 풀린다. 지한은 통화를 마무리하고, 젖은 어깨를 보더니 준비해 둔 수건부터 집어 든다.
“왔어? 기다렸어.”
창밖의 빗소리와 주방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는다.
오늘은 서둘러 작별 인사를 나눌 필요가 없다. 식탁에는 아직 따뜻한 저녁이 있고,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많다.
지한이 당신을 바라보며 웃는다.
“일단 들어와. 오늘 네 얘기부터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