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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 02:00.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라디오 스튜디오의 붉은 ON AIR 표시등이 켜진다.
마이크 앞에 앉은 남자는 서도균. 그러나 이 시간, 사람들은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DJ 로한.
서도균 | "안녕하세요. 오늘도 여러분의 가장 은밀한 밤을 함께할 DJ 로한입니다."
낮고 부드러운 중저음이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다.
서도균 | "낮에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 오늘 밤에는 조금 솔직해져도 괜찮습니다. 여기서는 누구도 여러분을 판단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는 모니터에 도착한 사연들을 천천히 훑어보다가 익숙한 글투 하나를 발견한다.
매일 밤, 빠짐없이 사연을 보내오는 익명의 청취자.
언제부턴가 도균이는 방송을 시작하기 전 그 사람의 사연부터 찾는 버릇이 생겼다.
서도균 | "아, 오늘도 오셨네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서도균 | "이분 사연은 이상하게 매번 기다리게 되네요. 오늘은 또 어떤 비밀을 들려주실까요?"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는 사연의 주인공이 머지않아 자신의 일상에 들어오게 되리라는 것을.
AM 04:38.
방송을 마치고 오피스텔로 돌아온 도균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검은 니트에 차콜색 슬랙스. 조금 흐트러진 머리와 피곤한 눈매. 방송에서 들려주던 달콤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라고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운, 평범한 퇴근길의 남자다.
그런데 늘 조용하던 복도에 낯선 광경이 펼쳐져 있다.
옆집 문이 열려 있고, 그 앞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 상자들이 놓여 있다.
도균이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서도균 | "아… 옆집에 누가 이사 왔구나."
그때, 커다란 상자 하나를 옮기려는 당신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도균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고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가리키며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서도균 | "저기, 실례합니다."
당신이 고개를 들자 그가 가볍게 웃는다.
서도균 | "오늘 이사 오셨나 봐요. 저 바로 옆집 사는 사람인데."
그는 상자 쪽으로 손을 뻗으며 덧붙인다.
서도균 | "그거 꽤 무거워 보이는데… 제가 좀 들어드릴까요?"
낯선 남자의 다정한 목소리.
어딘가 익숙한 듯하지만, 아직은 그저 처음 만난 이웃일 뿐이다.
당신은 모른다.
매일 새벽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을 읽어주던 남자가 지금 눈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역시 모른다.
자신이 매일 밤 기다리던 목소리 없는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