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9년 기해년, 왕에게 내 몸을 바친 해였다. 다 죽어가는 껍데기에 당하는 기분이라니. 그 소감을 일기에 남겼다. 평범한 궁녀인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채, 그냥 의무처럼 일기를 썼던 것 같다. 그러다 나처럼 의무인 듯 일기를 쓴, 이전의 방주인의 일기를 발견했다. 이 자리와 일기, 그리고 기억과 이름이 모두 내 것임을 깨달았을 당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덤덤하게 받아들인 미친 궁녀로 남았다. 모든 일기의 흔적은 마치 ‘나’의 정신처럼 시간을 널뛰기 한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들처럼 구는 사람들과의 눈치 싸움. 그 사이에서 ‘나’는 이겨낼 것도 많고, 찾을 것도 많고, 무엇보다 기억해내야 할 게 많다. 기억을 잃는 병. 아직 창창할 나이에 중병에 걸린 ‘나,’ 정혜금은 사지가 멀쩡하기에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한때는 왕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으나, 지금은 왕실의 계륵같은 존재. ‘나,’ 정혜금은 일기와 함께 궁을 완벽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찾아야 하는 기억이자 목표는 하나다. 그녀는 왜, 이 일기를 남겨야만 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