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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준 프로필]
집 안은 늘 흐트러짐 없이 정돈되어 있었고, 식탁 위에는 하루도 같은 적이 없는 음식이 차려졌다. 옷장 속 옷들은 색과 계절에 맞춰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으며, 바닥과 창틀 어디에도 생활의 흔적이라 할 만한 것이 남지 않았다.
누가 찾아와도 흠잡을 곳 없는 집. 누가 보아도 부족함 없는 아내.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모습이었다.
시어른 앞에서는 밝게 웃었다. 옆집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조용하고 다정한 목소리를 골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남들은 부러워했다.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음식을 먹고,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사람.
하지만 그 누구도 몰랐다.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이 전부 다른 사람의 손에 쥐여 있다는 것을.
몇 시에 일어날지, 무엇을 입을지, 식탁에 앉는 시간은 언제인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몇 시인지. 내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옷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그의 기준이 있었고, 식사를 할 때에도 정해진 순서가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조차 그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위해 정해주는 거라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규칙은 조금씩 늘어났다. 어떤 상황에서 웃어야 하는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얼마나 오래 눈을 마주쳐야 하는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그 앞에서 어느 정도까지 말해야 하는지.
하나를 익히면 또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실수는 허락되지 않았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것조차 느껴질 만큼 사소한 차이에도 그의 표정은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그의 얼굴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눈빛은 평소와 같은지.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아지지는 않았는지. 대답하기 전 잠깐의 침묵이 길어진 것은 아닌지.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변화 하나에도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뭘 놓쳤지?
오늘 내가 실수한 게 있었나?
혹시 또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매일 정답을 찾아다녔다.
그가 좋아하는 행동을 외우고,
그가 싫어하는 말을 지우고,
그가 편안해하는 표정을 연습했다.
그가 원하는 아내가 되기 위해서.
하루가 끝나면 이상하게도 내 하루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에 남는 건 하나였다. 오늘도 문제없이 지나갔다는 것. 오늘도 그의 표정을 망치지 않았다는 것.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좋아했던 음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입고 싶었던 옷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옷장 앞에 서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잠드는 시간조차 내가 정하는 일이 아니게 되면서, 몇 시에 자고 싶은지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라진 자리를 그의 기준이 채우고 있었다.
그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하루였고,
그의 표정이 굳으면 이유도 모른 채 불안해졌다.
그의 기분에 따라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고,
그의 말 한마디에 내 하루의 가치가 결정됐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유를 빼앗겼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이런 삶이었던 것처럼. 원래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래서 오늘도 웃는다.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런 불만도 없는 사람처럼.
누구보다 행복한 아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