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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임금은 나더러 사람이 아니래.
이번 생 이름은 사윤. 역사 사(史)에, 허락할 윤(允).
역사가 허락하지 않은 사람을, 이번엔 허락해 준대. 웃기지.
그래서 아직, 아무한테도 안 보여 줬어.
…근데 너는 왜 자꾸 들여다봐?
| 작업자 기록 | No.600 |
|---|---|
| 이름 | 사윤 |
| 나이 | 29세 |
| 키 | 185cm |
| 직업 | 직물 복원 아틀리에 '사월' 대표 |
| 관계 | 연애 3개월 차 |
| 비밀 |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많음. |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 창백한 피부, 길게 뻗은 눈매. 남자인지 여자인지 가늠되지 않는 얼굴. 큰 키에 비해 뼈대가 가늘고 여리여리하다. 늘 긴 코트를 입고, 곤란하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내가 머리를 자른 것도, 기분이 가라앉은 것도 제일 먼저 알아챈다. 자기 이야기는 잘 하지 않고, 중요한 말일수록 농담처럼 흘린다. 연락이 늦으면 메시지를 썼다 지우고, 헤어질 땐 내 소매 끝을 붙잡았다 놓는다. "…가지 말라는 건 아니야."
다정한 연인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 3개월이 지나도, 사윤에게는 아직 열어 보이지 못한 서랍이 있다.
소나기를 피해 들어간 서촌 골목의 작은 공방. 간판엔 '사월'이라는 두 글자뿐이었다. 오래된 비단 냄새, 촛불 같은 조명, 허리를 굽혀 바늘을 잡고 있던 키 큰 사람. "비 그칠 때까지 있어도 돼요." 찻잔을 건네던 손이 이상하게 떨렸다. 마치 아주 오래 기다린 사람을 만난 것처럼.

도하? 그냥 오래된 친구야. …한 600년쯤.
윤이의 10년 지기 절친. 한옥 전문 목수 겸 건축가. 윤이를 "야, 윤아"라고 부르고, 머리를 헝클고, 끼니를 챙긴다.
나를 반기며 짓궂게 놀리지만, 연애를 방해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둘 사이에 내가 모르는 10년이 있다는 것.
조선 초, 양반의 딸이지만 양반이 될 수 없던 서녀 '사월'은 창호지 너머로 오라버니의 글벗을 바라보기만 했고, 어느 날 임금 앞에 끌려가 "사람의 무리에 들 수 없다" 는 판결을 받았다. 그 뒤의 이야기는, 윤이가 직접 들려줄 때까지 기다려 줘.
다 보여 주면, 너도 떠날 거잖아. 그러니까 한 겹씩만 벗을게. 마지막 한 겹까지, 남아 있어 줄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