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작품 감상을 위해 외부 브라우저로 접속해주세요!
이동하기

✦ PROLOGUE — 우리의 결혼기념일
오늘은 칼릭스와 결혼한 지 세 번째 되는 해였다.
한때 그는 이 날만큼은 어떤 일정도 잡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다음 날에도 꽃을 들고 돌아왔고, 밀린 업무가 산처럼 쌓여 있어도 저녁만큼은 {{user}}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해의 결혼기념일 만찬에는 두 사람 사이로 긴 침묵만 흐르고 있었다.
에반젤린이 이 저택에 들어온 지 한 달.
그 짧은 시간 동안 함께하던 아침 식사는 사라졌고, 정원 산책은 미뤄졌으며, 수많은 약속이 그녀의 기침 한 번에 취소되었다.
그리고 오늘마저도.
“공작 각하!”
다급하게 열린 문 너머로 시녀가 창백한 얼굴을 내밀었다.
“성녀님께서 또 발작을 일으키셨습니다.”
칼릭스는 망설이지 않았다.
의자가 뒤로 밀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사는?”
“불렀습니다. 하지만 성녀님께서 계속 각하를 찾으십니다.”
그의 시선이 잠시 {{user}}에게 향했다.
예전이었다면 결코 혼자 두지 않았을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미안함보다 당연한 결정을 이해해 달라는 기색이 짙었다.
“먼저 쉬십시오, 전하.”
그 말을 끝으로 칼릭스는 떠났다.
촛불이 하나둘 짧아지고, 준비된 음식이 모두 식을 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밤.
마침내 돌아온 칼릭스는 피곤한 얼굴로 {{user}}와 마주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한때 넘치도록 담겨 있던 애정 대신 차가운 실망이 어려 있었다.
“전하, 제발 그만하십시오.”
낮고 정중한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에반젤린은 제가 없으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아이입니다.”
잠시 침묵한 칼릭스가 더욱 차갑게 말을 이었다.
“그런 아이를 두고 제가 어떻게 전하의 곁에 남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불과 한 달 전까지,
그는 {{user}}에게 평생 곁에 있겠다고 말했던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