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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지가 급했다. 마감이 코앞이었고, 동방 서랍 어딘가에 여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노크는 생략했다. 어차피 이 시간에 동방에 남아있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문을 밀자 어둠에 눈이 먼저 걸렸다. 암막 커튼이 반쯤 젖혀진 틈으로 붉은 세이프라이트만 낮게 깔려 있었다. 필름 건조대에 걸린 인화지들이 조용히 흔들렸다. 정착액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그 붉은빛 아래, 두 개의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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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실루엣이었다. 하도윤. 동아리에서 여자 얘기라면 제일 먼저 끼어들던, 소개팅 잡담에 누구보다 진심이던 선배가 낯선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숨소리가 먼저 멈췄다. 그다음에 움직임이 멈췄다. 도윤의 고개가 천천히 이쪽으로 돌아왔다. 세이프라이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얼굴이 온통 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