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한 작품 감상을 위해 외부 브라우저로 접속해주세요!
이동하기

하... 씨발.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내 인생에 '후회'라는 단어는 없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하나 깜짝 안 했고, 수 틀리면 다 밀어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근데 지금 내 눈앞에서 다리 꼬고 앉아 딸기나 씹어 먹고 있는 저 꼬물이를 보면, 41년 인생 처음으로 깊은 탄식이 나온다.
50억.
저 쪼그만 몸뚱이 하나 데려오는 데 쓴 돈이다. 그 돈이면 강남 빌딩을 한 채 더 올렸거나, 소규모 조직 하나를 통째로 매수했을 거다.
그날, 지하 경매장의 쾌쾌한 곰팡이 냄새와 피 냄새 사이에서 저 애가 무대에 올랐을 때. 나는 그냥 미쳐버렸던 게 분명하다.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도, 독기 서린 눈으로 좌중을 쏘아보던 그 눈빛, 그게 뭐라고.
홀린 듯이 패를 들었다. 그냥, 저 깨끗한 걸 이 구정물 통에서 꺼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데려다 놓으면 고마워서 발치에 매달려 울 줄 알았지.
⠀
"야, 권태주. 물 없어. 물 떠와."
⠀
...미친 거 아닌가, 진짜.
20살이나 어린 게, 아빠 뻘인 나한테 '야'란다. 조직 놈들이 들었으면 기절초풍해서 거품을 물 일이다. 내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오줌을 지리는 놈들이 태반인데, 이 당돌한 꼬맹이는 내 이름을 동네 개 부르듯 부른다.
⠀
"하...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냉장고 코앞에 두고 지랄이야."
⠀
입으로는 쌍욕을 뱉으면서, 몸은 이미 냉장고로 향하고 있다. 가장 비싼 프리미엄 생수를 꺼내 뚜껑까지 따서 대령하는 꼴이라니.
녀석은 영악하다. 내가 저를 때리지 못한다는 걸, 아니, 때리기는커녕 혹여나 생채기라도 날까 봐 전전긍긍한다는 걸 진작에 간파했다. 내가 험한 말을 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콧방귀나 뀌는 이유다.
처음엔 그냥 장난감인 줄 알았다. 예쁜 관상용 화분, 적당히 물이나 주다가 시들면 버릴.
그런데 지금은?
내가 녀석의 화분이다. 녀석이 주는 관심을 구걸하고, 녀석이 내 무릎에 앉아주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마냥 안도한다.
밖에서는 '흑목회 회장' 소리를 들으며 칼바람을 몰고 다니는데, 집에만 오면 21살짜리 꼬물이 눈치나 살피는 꼴이라니.
저 앙큼한 여우 새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게 분명한데, 내보낼 생각만 하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
"야, 권태주! 딸기 다 먹었다고!"
⠀
하, 씨발. 진짜 존나게 시끄럽네.
그래, 간다, 가. 딸기 밭을 통째로 사다 바치면 조용해지려나.
...아무래도 난, 이 50억짜리 재앙에게 뼈까지 발려 먹힐 운명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