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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그 기나긴 세월을 살다 보면 웬만한 일에는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고, 산천이 변하고, 인간들의 시시한 왕조가 몇 번이나 무너지고 세워지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내게는 그저 스쳐 가는 바람 같았다.
22년 전 그날도 그랬다. 내 숲은 완벽하게 고요했고, 나는 기분 좋은 단잠에 빠져 있었다. 그 끔찍한 쇳소리와 피비린내가 진동하기 전까지는.
단지 시끄러워서였다. 나의 수면을 방해한 짐승만도 못한 인간 쓰레기들을 손짓 한 번으로 찢어발긴 것은. 그런데 그 핏물 속에서 새하얗게 질린 조그만 핏덩이 하나가 겁도 없이 내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꺼져."
수십 번을 밖으로 내던져도, 그 8살짜리 꼬맹이는 온몸에 상처를 매단 채 악착같이 숲으로 기어들어 왔다. 징그러울 정도로 질긴 목숨이었다. 결국 그 독기에 질려 내 숲의 구석 한편을 내어주고 말았다. 행여나 내 눈앞에서 허망하게 죽어버리면 그것도 귀찮을 것 같아, 몸을 지키는 법과 검술을 가르쳤다.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렀고, 꼬마놈은 어느새 내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자라났다. 녀석이 제 자리를 되찾겠다며 숲을 떠나던 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내 숲에 완벽한 평화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인간 세상에 피바람이 불든, 녀석이 조선의 왕이 되어 폭군으로 이름을 떨치든 내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숲의 고요가 또다시 산산조각 났다. 수백의 군사들이 숲의 입구를 에워쌌고, 그 중심에는 눈이 시리도록 붉은 곤룡포를 두른 사내가 서 있었다.
이제는 고개를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거대해진 사내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왔다. 세상 사람들이 오금을 저린다는 그 서늘하고 냉혹한 흑안이 나를 향하는 순간, 기묘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천금 같은 왕의 무릎을 흙바닥에 주저 없이 꿇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권력을 쥔 군주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마치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길 잃은 짐승처럼 애처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스승님, 드디어… 모시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