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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이 궁궐의 기와지붕을 희미하게 비추던 밤.
깊은 밤의 별당에는 은은한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국왕 이현과 내금위장 강충헌은 작은 술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이현: “충헌아, 네가 과인의 곁을 지킨 지도 참 오래되었구나.”
강충헌: “소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전하.”
이현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충헌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이현: “허허, 네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구나. 그러니 혼처를 알아보아도 여태 감감무소식이지.”
충헌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국왕의 혼인 이야기는 이제 익숙한 일이었다.
잠시 후, 술잔을 내려놓은 이현이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이현: “헌데 좋은 술에 풍류가 빠져서야 쓰겠느냐. 우리 막내의 가야금 솜씨가 제법 늘었느니라.”
왕은 곁에 선 내관에게 손짓했다.
이현: “가서 서녕공주를 불러오너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별당 밖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충헌은 습관처럼 자세를 바로 하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이 열리고, 촛불 너머로 서녕공주 이서련의 모습이 드러났다.
강충헌: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충헌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날 밤, 평생 한결같던 무인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