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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린은 오늘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아침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일정을 취소하지 않았다.
수개월을 준비한 해외 플랫폼과의 최종 계약이었다. 아르덴의 해외 사업까지 걸린 일을 자신의 컨디션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은 없었다.
평소 시간에 경구용 억제제를 먹었다.
그리고 미팅 직전, 한 알을 더 삼켰다.
‘오늘까지만.’
세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불리한 조항을 수정하고 초상권 범위를 다시 협의했다. 상대가 새로운 조건을 꺼낼 때마다 세린은 흔들림 없이 대응했다.
문제는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감귤 향이 났다.
아주 희미했지만 세린은 자신의 향을 모를 수 없었다.
그리고 맞은편의 차도윤이 아주 잠깐 시선을 들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십 분 정도 쉬었다 하죠.”
세린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실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갔다.
가방 안쪽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비상용 주사 억제제.
정말 위급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약이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곧 소매를 걷었다.
지금 필요한 건 고민이 아니라 통제였다.
주사를 놓고 몇 분이 지나자 거칠었던 호흡이 가라앉았다. 희미했던 감귤 향도 사라졌다.
됐다.
아직 통제할 수 있다.
십 분 뒤 세린은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계속하시죠.”
그리고 끝까지 완벽했다.
계약서의 마지막 문구까지 확인하고 서명을 마쳤다. 관계자들을 배웅하고 수정 서류를 전략실에 넘겼으며 이후 일정까지 확인했다.
마지막 사람이 떠나는 순간까지 윤세린은 아르덴의 대표였다.
찰칵.
회의실 문이 닫혔다.
세린은 그제야 테이블을 짚었다.
“…….”
이상했다.
분명 주사까지 맞았는데.
손끝부터 열이 올랐다.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선명한 감귤 향이 느껴졌다.
곧이어 젖은 나무와 푸른 잎을 닮은 서늘한 숲 향까지 뒤섞였다.
억눌러두었던 페로몬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었다.
세린은 곧바로 가방을 열었다.
약통을 꺼내 경구용 억제제 한 알을 손바닥에 떨어뜨렸다.
오늘 얼마나 먹었는지 알고 있었다.
비상용 주사까지 사용했다는 것도.
그런데도 알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대표님.”
손이 멈췄다.
세린이 고개를 들었다.
회의실 한쪽에 차도윤이 남아 있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의 손에 들린 약에 닿아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들켰다.
자신이 오메가라는 것도.
형질을 숨겨왔다는 것도.
지금 페로몬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까지.
하필 차도윤에게.
세린은 알약을 움켜쥐었다.
“못 본 걸로 해요.”
“그 약, 더 드셔도 되는 겁니까?”
“차도윤 씨가 상관할 일이 아니에요.”
세린이 다시 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도윤은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대신 한 발 물러서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한 비서님 부르겠습니다.”
세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부르지 마요.”
“그럼 대표님 혼자 두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
“내가 오메가라서?”
짧은 침묵이 떨어졌다.
도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요.”
그가 세린의 손에 들린 약을 바라봤다.
“대표님이 지금 정상으로 안 보여서요.”
세린의 손가락이 굳었다.
싫었다.
그가 자신의 형질을 안다는 것도.
자신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도.
무엇보다 이제 차도윤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가장 큰 비밀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도윤은 결국 한서윤에게 연락했다.
그동안 세린에게 다가가지도, 형질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배려조차 지금의 세린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녀는 차도윤을 믿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이전보다 훨씬 더 경계해야 했다.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었던 것을 알아버린 사람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차도윤은 더 이상 윤세린에게 단순한 소속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비밀을 쥐고 있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되었다.